안동에는 유명한 서원과 고택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 도산서원이 가보고 싶었지만 여러 번 지나치기만 하고
아쉽던 차에
이번 측량 장소로 하회마을 근처의 병산서원 입구로 결정이 되어 반가움에 달려갑니다
★병산서원 홈페이지 발췌★
본래 이 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다.
1572년(선조5)에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613년(광해군5)에 존덕사(尊德祠)를 창건하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1614년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620년(광해군12)에 유림의 공론에 따라 퇴계 선생을 모시는 여강서원(廬江書院)으로 위패를 옮기게 되었다.
그 뒤 1629년(인조9)에 별도의 위패를 마련하여 존덕사에 모셨으며,
그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3년(철종14)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졌다.
매년 3월 중정(中丁: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사적 제 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흐린 날씨에 서원을 구경하기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병산서원 입구는 한창 주차장 공사 중이었습니다.
도로가 포장이 안 되어있어 먼지도 많이 날려 조금은 불편했지만, 주차장만 지나면 별문제는 없습니다.
복례문(復禮門)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병산서원의 솟을삼문은 가운데 칸만 판문(板門)이고, 좌우로는 담장과 구분되는 벽채를 한 칸씩 두고 있다.
‘복례’라는 이름은 논어 <克己復禮爲仁>에서 유래한다.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함축한 경구(警句)로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는 유학의 자기절제의 정신을 표현해 놓은 것이다.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 있지 않았다.「입교당 중건일기(1921)」에 의하면 서원의 측면인 만대루 동편에 있었던 것을 이건한 것이라 한다. 병산의 험한 형세를 피하고자 했던 풍수원리가 담겨있었다
▼만대루(晩對樓)
- 병산서원에서 가장 알려진 건물로서 건축과 조형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지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이다.
- 팔작기와집에 홑처마로 된 이 웅장한 건물은 인공적인 서원건축과 자연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데
- 한국 서원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기둥사이로 보이는 낙동강과 병산은
- 마치 7폭 병풍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 ‘만대’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구절인
- '취병의만대 백곡회심유(翠屛宜晩對 白谷會深遊)'에서 따온 말이다.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수는 늦을 녘 마주 대할만 하고, 흰 바위 골짜기는 여럿 모여 그윽히 즐기기 좋구나’. - 병산서원을 대표하는 매우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입교당(立敎堂)
서원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인 강당이다. 원래의 명칭은 숭교당(崇敎堂)이었고 명륜당이라고도 불렸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의미이며, 서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으로 가구는 5량(樑)이다. 강학당을 가운데로 하고 동쪽의 명성재(明誠齋)와 서쪽의 경의재(敬義齋), 세 부분으로 나뉜다. 양쪽 방에는 온돌을 들이고 중앙의 강학당은 3칸의 대청으로 개방하였다. 툇마루가 마련된 명성재에는 서원의 원장(院長)이 기거했으며, 서쪽의 경의재는 이른바 교무실에 해당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달팽이 뒷간서원 밖 주소(廚所) 앞에 있는 화장실이다. 진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끝 부분에 가리도록 둥글게 감아 세워 놓았는데, 그 모양새에서 이름을 따왔다. 출입문을 달아 놓지 않아도 안의 사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한 구조이다. 지붕이 따로 없는 이 하늘 열린 '달팽이 뒷간'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것이다. 400여년 전 서원건물과 함께 지어졌으며, 옛 기록에는 대나무로 벽을 둘렀다고도 전해진다. 병산서원의 부속건물에 포함되어 사적 제 206호(1977년)로 지정되었다. 2003년 보수 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신문(神門)서원의 내삼문(內三門)에 해당하며, 향사(享祀) 때에 제관(祭官)들이 출입하였다. 정면 3칸의 솟을삼문으로 사당의 출입문답게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의 접근을 막고 있다.
향사례에서 신문 앞의 마당은 중요한 장소가 된다. 집례를 맡은 임원들은 신문 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일반 학생들은 앞마당에서 참관하여야 한다.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오셨습니다
▼병산서원 맞은편에는 낙동강이 휘돌아 가고 있습니다.
하회마을처럼요. 모래톱이 꽤 넓어요.
출장길에 들른 모든 곳 언제 다시 올까요?
짬 나는 데로 들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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