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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여행

석가탄신일 앞두고 찾은 전북 완주군 위봉사

 

 

전주에서 4일째
날씨 좋고 미세먼지 없는 날
우리는 점심 먹고 바람 쐬러 가까운 곳 완주군 소양면으로 향하였습니다.
모처럼 깨끗한 날의 드라이브
비록 사내들끼리지만 여행은 늘 설레죠.
두 번째 방문한 곳은 완주군 소양면에 자리 잡은 위봉사입니다

 

                             =위봉사=                                 

 

송광사에서 동북쪽으로 3Km쯤 가면 원래 외성이라 했다는 오성마을이 나오고

여기서 추줄산을 돌고 돌아 1.5Km쯤 오르면 위봉산성의 서문에 다다른다.  

다행인 것은 문위에 있었다는 3칸의 문주는 자취를 감췄지만

높이 3m 폭 3m의 홍예석문이 지방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점이다.

이 산성은 1675년 7년의 세월동안 인근 7개 군민을 동원하여 쌓은 것으로

국토방위라는 목적보다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지만 전주의 경기전에 있는 태조영정을 피난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결국 동학농민혁명 때 태종 영정을 이곳으로 피난, 산성축조의 목적을 달성한 바 있다.

당초의 성 규모는 길이 16km 높이 4∼5m 폭 3m 의 석축이었고 3개소의 성문과 8개의 암문이 있었다 한다.

지금은 극히 일부의 성벽과 동서북문 중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무지개문을 빠져나와 위봉마을을 지나면 옛날 52개의 말사를 거느린 호남의 모사(母寺) 위봉사가 있다.

전주 동북방 26km지점인 이곳 추줄산에 위치한 위봉사는 604년(백제 무왕 5년)서암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하며

1359년(고려 공민왕 8년) 나옹화상이 중창했다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시대 건물이며

조선조 세조 때 포호대사가 쓴 보과영전현판기를 보면 당시 규모가 전각 28동에 암자가 10동에 달한다고 되어있는데

지금은 보물 제608호인 보광명전과 지방 문화재 제698호인 요사와 삼성각만이 남아있고

백의관음보살 벽화가 자랑거리이다.

현재는 조계종 비구니의 수련장으로 확대, 중창되고 있다.    
높이 60m에 2단으로 휘어져 쏟아져 내리는 장관은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데 그만이다.

이 물은 북쪽으로 흘러 관광명소인 동상을 거쳐 대아저수지에 흐른다.

겨울에 보는 위봉폭포는 꽁꽁얼어 하얀 천이 산자락을 가로지른 듯 보여 절경을 이루기도 한다.  

이 밖에도 완주군내에는 낚시터로 잘 알려진 구이, 경천, 양야, 어두 저수지가 있고

전쟁 때 전주방어의 요새였던 곰치와 이치, 그리고 산자수려한 만덕산 등 천혜의 명소가 많다.

출처=대한민국 구석구석

 

일주문입니다.

일주문 앞 주차장도 잘 정비되어 있더군요

사천왕문입니다.

   입구에 약수가 있어 한 모금 마시고 둘러보니 팻말이 하나 박혀있네요.

 

 

▼바로 요것

  스님들이 머무시는 곳에 진돗개가 있더군요.

 

봉서루입니다.지나면 경내의 큰 마당이 나옵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연등이 많이 걸려있습니다.

 

 

 

범종각입니다.

 

 

 

▼가운데 석탑을 찍었는데 나무에 묻혔네요.

 

위봉사 보광명전입니다.(보물 제608호)

 

  이 건물은 조각솜씨나 목재를 다듬은 기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법당 안에는 극락을 주관하는 아미타불을 으뜸 부처로 모셨다.

좌우의 중심기둥사이에 칸막이 벽을 세우고, 그 뒤에 흰옷을 걸친 관음보살상을 그렸다.

불상 왼쪽 벽에는 악기를 든 선녀를 비롯해 여러 인물을 묘사한 그림을 걸었고, 바둑판무늬로 짠 천장에는 연꽃을 그렸다.

이러한 그림들은 단청과 더불어 차분한 색조를 띄어 전체적으로 아늑한 느낌을 준다.

부위마다 굵직한 목재를 사용하였고 귀퉁이의 기둥도 높게 솟아, 건물외양이 웅장함을 느끼게 한다

츌처=대한민국 구석구석

 

위봉사요사(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69호)

  스님들의 거처인 이 건물은 중심 법당인 보광명전의 오른쪽에 있다.

  요사라고 하지만 앞면 중앙은 대청마루를 둔 법당으로 "관음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좌우에 스님들의 실제 거처인 요사체를 두어 건물 평면이 I자형을 이룬다.

  조선 고종 5년(1868)에 절 확장을 위한 큰 공사가 있었는데,

  건물의 짜임새로 보아 이 요사도 그때  지은 듯하다

  조선시대의 주택 구조를 취하면서도 일부는 법당 형식으로 장식하였다.

  관음전과 승방,부엌 등은 지붕의 높낮이가 서로 다른데

그 기능에 따라 차이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한적한 사찰
느리게 걸으며
눈에 다 담아봅니다.
위봉사를 다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